YOU DIED
Why we didn’t throw away the black furniture
4년 전에 만든 가구를 부수고, 덧대고, 교체했다.
01 다시 고쳐달라는 의뢰
A request to fix it again
새 의뢰인은 공간에 남아 있던 검은 가구를 모두 없애고 싶어 했다. 문제는 그 가구를 만든 사람이 나였다는 점이다.
이곳을 처음 리모델링할 때 나는 검은색으로 마감한 가구와 몇 개의 사물을 만들었다. 네 해가 지나 주인이 바뀌었고, 같은 장소를 다시 고쳐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새로운 의뢰인이 이전 공간의 흔적을 지우고 싶어 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나 역시 그녀에게 검은색 가구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의뢰인의 철거 요구 사항을 들은 후에 나는 살릴 것이 없는지 살펴봤다.
검은색을 없애는 것과 가구 전체를 버리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큰 것은 돈의 문제이기도 했다. 공사비를 최대한으로 줄여야 하는데 가구는 새로 사는 상황이 좀 이상하게 느껴졌다.
02 색은 싫지만 골격은 멀쩡했다
The colour had to go; the frame was fine
다시 말하지만 검은색 표면은 새로운 주인과 맞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 아래의 구조와 크기까지 쓸모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오래된 것을 고칠 때, 혹은 오래된 건물에 진입할 때, 무엇을 남길지는 오래됐다는 사실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기존 가구를 재사용할지는 표면보다 골격과 상태, 새로운 사용, 보수에 필요한 비용을 함께 보고 판단한다.
무엇을 철거하고 무엇을 다시 사용할지 정하기 위해 가구를 세 가지로 나눴다.
철거할 것 / To remove
새로운 주인과 함께 사용할 이유가 없어진 것.
덧댈 것 / To keep
형태와 골격이 다음 사용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고쳐 쓸 것 / To repair and reuse
사용할 수는 있지만 지난 4년 동안 불편하게 써온 것.
03 등받이
The backrest
기존 가구 위에 밝은 목재를 덧댔다. 등받이가 없던 벤치에는 등받이를 추가했다. 쓰면서 불편해 왔던 것을 굳이 지킬 필요는 없었다. 이전 설계가 틀렸다고 크게 선언할 필요도 없었다. 솔직히 나는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그 때는 불편해도 괜찮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4년전 만들어진 가구는 완공 사진 속에만 있지 않았다. 사람들이 앉았고, 기대려 했고, 불편해 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다시 작업할 기회가 생겼다. 어쩌면 나는 이 등받이를 고치기 위해 공사를 하게 됐을지도 모른다.
04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
New and Old
기존 가구를 다시 사용한다고 해서 새 목재까지 오래돼 보이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
골격과 밝은 목재는 서로 다른 시기에 만들어졌다. 그 차이는 그대로 두었다. 새로운 재료가 기존 부분을 흉내 내기보다, 둘이 하나의 가구로 작동하도록 접합부를 조정했다.
오래된 건물에서도 낡은 표면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남길 필요는 없다. 벗겨진 페인트가 항상 역사는 아니다. 때로는 그냥 벗겨진 페인트다.
흔적을 남기는 일과 방치하는 일은 꽤 가까이 붙어 있다.
05 버리지 않을 이유
Reasons not to throw it away
모두 철거하고 새로 만들었다면 작업은 더 단순했을 것이다. 반대로 모든 것을 남겼다면 새 주인과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나에게 이번 프로젝트는 둘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의 균형을 잡는 일이었다. 가구를 하나씩 보고, 다시 쓸 수 있는지 확인하고, 덧댈 판재의 크기와 등받이의 각도를 정하는 일 같은 것 말이다.
계속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남겼다. 불편한 것은 고쳤다. 새로운 사용에 필요하지 않은 것은 없앴다.
결국 검은 가구는 없어졌다. 정확히 말하면 검은색은 전부 없어졌고, 가구의 일부는 남았다. 4년 전의 설계도 조금 남았고, 그 동안 확인된 불편도 함께 수정됐다. 이번에는 다행히 등받이가 있다.
사진 © 박세희